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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정리하지 못하는 집, 복잡한 마음의 반영일까?

by idea3092 2025. 3. 26.

1. 물건이 아닌 감정을 쌓아두는 사람들

집 안에 물건이 가득 쌓여 있고, 오래된 종이봉투나 다 쓴 플라스틱 용기조차 그대로 놓여 있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풍경일 수 있습니다. “언젠간 쓰겠지”라며 차곡차곡 쌓아온 물건들이 어느새 걷기조차 불편한 공간을 만들고, 치우려 해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상황에 놓이게 되죠. 이런 모습을 보면 종종 ‘게으름’이나 ‘정리 습관 부족’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정리하지 못하는 공간은 그 사람의 내면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특히 저장강박(hording disorder)은 단순히 물건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순간 발생하는 불안감, 손실감, 그리고 감정적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게 작용하는 상태입니다. 물건은 기억이나 정서의 상징이 되기 쉽고, 어린 시절의 외로움이나 이별, 혹은 반복된 결핍의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어떤 대상을 놓는 데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들은 “이 물건은 나의 과거를 담고 있어”, “이걸 버리면 중요한 걸 잃을지도 몰라”라는 감정으로 인해 물건을 붙잡고 있으며, 이는 일종의 감정 보관함으로서의 공간 구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워내는 것이 단순한 청소 행위가 아니라, 정서적 연결을 끊어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죠.

정리하지 못하는 집, 복잡한 마음의 반영일까?

2. 통제의 욕구가 물건으로 향할 때

삶은 언제나 예상할 수 없는 변수들로 가득합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가족 간 갈등, 건강 문제나 재정적인 불안처럼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반복될수록, 사람은 자신이 삶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럴 때, 일부 사람들은 손에 잡히는 물건이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심리로, 버리지 않고 쌓아두는 방식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처럼 물건을 쉽게 정리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축적하는 것은, 내 삶에서 잃어버린 안정감과 주도권을 물건이라는 형태로 붙잡으려는 시도일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이라 설명합니다. 물건은 다루기 쉽고, 즉각적인 반응을 하지 않으며, 내 방식대로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그것을 통해 일종의 안전지대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죠.

특히 큰 상실이나 인생의 전환기를 겪은 후, 갑작스레 물건을 모으기 시작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습니다. 이사, 가족의 죽음, 퇴직, 이혼 등은 심리적 공허함과 정체성 혼란을 불러오는데, 물건은 그런 감정의 틈을 메우는 ‘의미 있는 덩어리’가 되기도 합니다. 이들은 물건을 통해 ‘나는 여전히 뭔가를 가지고 있다’, ‘내 과거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감각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왜 이런 걸 아직도 가지고 있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에게는 그것이 곧 자신의 일부이자 기억의 조각이 되는 것이죠.

3. 공간의 상태는 마음의 상태를 비춘다

심리학에서는 공간을 ‘제3의 피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가 머무는 공간이 단순히 기능적인 장소가 아니라, 정서적 안정감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중요한 매개체이기 때문입니다. 집은 나의 감정 상태가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장소이며, 때때로 방 안의 상태가 그 사람의 내면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답답함, 바닥에 내려놓은 채 그대로 잊힌 상자, 책상 위에 쌓인 각종 영수증과 포장지들. 이런 풍경은 그 사람이 감정적으로 얼마나 복잡한 상태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우울감이나 무기력 상태에 빠진 사람은 정리할 힘조차 없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그대로 쌓아두는 것이 오히려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안전한 선택처럼 느껴지죠.

그러나 반대로, 정리를 조금씩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명료함과 감정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공간이 비워질수록 머릿속의 혼란도 줄어들고, "이건 내가 선택한 것이야"라는 감각은 자기 효능감을 높여줍니다. 실제로 물건을 분류하고,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결정하는 과정은 내 삶에서 불필요한 감정을 정리하고, 어떤 관계나 기억과 작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심리적 신호가 될 수도 있습니다.

4. 정리보다 중요한 건 내 감정에 대한 이해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고 해서 무조건 병적인 상태로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를 스스로 인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단순히 청소를 시작하기에 앞서, “왜 이 물건을 놓기 어려운 걸까?”, “지금 이 물건에 담긴 내 감정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이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심리 상담에서는 저장 강박이나 정리 문제를 겪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물건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의미를 함께 탐색합니다. “이건 돌아가신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사준 옷이라 버릴 수 없어요”, “실패했던 시험공부 노트를 아직도 못 버리겠어요” 같은 말 뒤에는 단순한 물건 이상의 감정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리는 물건을 치우는 일이면서, 동시에 감정의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런 감정에 대해 이해하고, 그 감정을 수용하는 연습이 병행되어야 비로소 정리는 ‘버리는 일’이 아니라 ‘돌보고 마무리 짓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감정에 매여 있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공간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죠.

5. 비운다는 건, 나를 위한 자리를 만드는 일

우리는 때때로 무언가를 쌓아 올리며 안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무게는 점점 무거워지고, 정리되지 않은 채 쌓인 감정과 물건은 결국 나의 움직임마저 방해하게 됩니다. 진짜 필요한 건,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내 마음을 담을 여백일지도 모릅니다.

정리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집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시 중심에 두고 삶을 재정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버리는 것에는 아픔이 따르지만, 그 아픔은 나를 위한 자리 만들기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당신의 방 한 켠이 버거운 마음처럼 느껴진다면, 아주 작은 물건 하나를 꺼내 들고, 그 감정부터 천천히 들여다보아도 괜찮습니다. 감정이 정리될 때, 비로소 공간도 달라지기 시작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