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가 궁금해

우리는 왜 루머에 쉽게 속을까? 심리적 이유를 깊이 들여다보다

심궁 2025. 7. 4. 23:20

루머란 단순한 소문 그 이상

루머(rumor)는 단순히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로 치부되기 쉬우나, 사회적·심리적으로는 훨씬 더 복잡한 개념입니다. 일반적으로 루머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사람들 사이에서 구전되거나 디지털 방식으로 퍼지며,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일종의 '사회적 진실'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위기 상황이나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는 루머가 그 자체로 집단의 불안을 완화하는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고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루머는 다음 세 가지 조건에서 발생합니다.

조건 설명
불확실성 정보가 부족하거나 공식 발표가 없는 상황
중요성 당사자에게 실질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
모호성 사실 확인이 어려운 복잡한 맥락

불확실한 상황에서 루머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우리는 왜 루머에 쉽게 속을까? 심리적 이유를 깊이 들여다보다

사회심리학에서는 루머가 집단 내 정보 공백을 메우는 일종의 '비공식적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작동한다고 봅니다. 정보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설명을 찾으려 하며, 이 과정에서 루머는 심리적 안정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의 구조조정 소문, 연예인의 열애설, 신제품 출시에 대한 추측 등은 모두 불확실한 현실을 설명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은 루머를 믿음으로써 모호한 상황에 대한 통제감을 느끼게 되며, 이는 생존 본능과도 연결되는 심리적 반응입니다.

심리를 파고드는 루머의 5가지 속성

1. 인지 부조화: 심리적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본능

사람은 기존의 신념이나 가치관과 충돌하는 정보를 접하면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는데, 이를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1957년 이를 이론화하며, 사람은 불일치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기존 신념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루머는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 부정행위를 했다는 뉴스가 나올 경우, 이를 인정하는 대신 ‘그건 루머일 뿐’이라며 심리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생깁니다.

2. 확증 편향: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심리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정보를 뒷받침하는 내용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정부 공공포털 및 국내 언론에서도 루머 확산의 심리적 배경으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개념입니다. 루머가 개인의 기존 생각이나 감정에 부합할 경우, 이를 사실로 인식하고 다른 정보를 걸러내게 됩니다. 이로 인해 루머는 더욱 견고한 '사실처럼' 퍼지게 됩니다.

3. 동조 심리: 집단 내 동질감 확보 욕구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며,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루머에 대해 '검증'보다 '동조'하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심리는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Solomon Asch)의 동조 실험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실험에서는 명백히 틀린 정답을 말하는 집단 속에서 참가자의 대다수가 집단의 의견에 따라 틀린 답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는 사회적 소속 욕구가 얼마나 강하게 개인의 판단을 왜곡시키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4. 감정 자극 정보의 확산력

루머가 빠르게 퍼지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감정을 자극하는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공포, 분노, 충격, 동정심 등을 유발하는 정보는 뇌의 편도체를 자극하며, 이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정보에 대해 보다 빠르고 강하게 반응하며, 이런 정보는 검증보다 '공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5. 디지털 피로와 정보 과잉의 시대

현대인은 하루에도 수천 개의 정보에 노출됩니다. 이처럼 과도한 정보 속에서 모든 사실을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직관적 판단, 감정적 반응, 혹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기준으로 정보를 수용하게 되며, 그 결과 루머와 진실의 경계가 흐려지게 됩니다. 정보 피로(information fatigue)는 결국 비판적 사고 능력을 떨어뜨리고, 루머의 무분별한 수용으로 이어집니다.

 

현대 사회에서 루머가 더 강력해진 이유

우리는 왜 루머에 쉽게 속을까? 심리적 이유를 깊이 들여다보다

1. SNS 알고리즘이 자극적인 콘텐츠를 우선시함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이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데 목적을 두고 설계됩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틱톡 등 대부분의 플랫폼은 ‘관심 기반 추천 알고리즘’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더 오래 머무를 만한 자극적인 콘텐츠를 먼저 노출시킵니다. 루머는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알고리즘에 의해 빠르게 확산되기 쉽습니다.

또한 SNS 상에서는 루머의 출처나 맥락 없이 짧고 강렬한 메시지가 공유되기 때문에, 정보의 진위를 판단할 기회조차 없이 소비자에게 도달하게 됩니다. 이런 환경은 사실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우선시하게 만들며, 결국 루머가 진실보다 앞서 퍼지는 구조를 강화합니다.

2. 확산의 속도는 정제된 정보보다 빠르다

실제로 MIT 미디어랩(MIT Media Lab)의 2018년 연구에 따르면, 가짜뉴스는 진실된 정보보다 평균 6배 빠르게 리트윗되며, 그 도달 범위 또한 훨씬 넓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정치, 자연재해, 테러 등 사회적 파급력이 큰 이슈일수록 그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이는 루머의 구조가 사람의 뇌에 더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공유할 가능성도 높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실제 사례: 루머가 만들어낸 집단적 혼란

1. 코로나19 초기 ‘화장지 대란’ 사태

2020년 초, 코로나19 확산 초기 호주와 일본, 한국 등지에서 화장지가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중국에서 수입되는 펄프가 끊긴다”, “마스크 생산 때문에 화장지가 부족하다”는 근거 없는 루머가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실제로 소비자들은 마트에서 대량으로 화장지를 사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루머의 기원은 SNS와 단체 채팅방을 통해 “마스크 생산 때문에 화장지가 줄어든다”는 내용이 무분별하게 공유된 데서 비롯됐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마스크와 화장지의 생산 공정과 원재료는 전혀 다르며, 한국소비자원과 식약처 등에서도 해당 정보를 명확히 부정한 바 있습니다.

2. 연예인 관련 허위 사망설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명인의 허위 사망설은 자주 등장하는 루머 유형입니다. 살아 있는 연예인에 대해 사망했다는 소문이 SNS나 커뮤니티에 퍼지고, 해당 인물이 직접 해명하기 전까지는 대중이 혼란을 겪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특히 팬덤 커뮤니티나 실시간 검색 트렌드를 통해 퍼진 이러한 루머는 단기간 내에 수백만 명에게 확산되며, 사실 여부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진짜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루머는 개인에게도, 사회 전체에도 신뢰 훼손과 혼란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루머에 속지 않기 위한 심리적 면역력 기르기

우리는 왜 루머에 쉽게 속을까? 심리적 이유를 깊이 들여다보다

1. 감정이 반응하는 순간, 한 걸음 멈추기

루머는 대부분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분노, 공포,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정보가 나에게 도달했을 때는 즉각적인 공유보다, 한 박자 쉬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감정이 개입된 정보일수록 객관적 판단력이 흐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2. 출처 확인은 정보 소비의 기본

가장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은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는 습관입니다. 언론사의 공식 보도, 정부 기관의 발표, 전문가의 인터뷰 등은 최소한의 신뢰도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반면 ‘지인에게 들었다’, ‘단톡방에서 퍼졌다’는 식의 정보는 반드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3. 비판적 사고 능력은 훈련을 통해 강화된다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는 타고나는 능력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발전시키는 역량입니다. 다양한 시각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훈련, 통계나 연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보 해석, 언어적 설득 구조 파악 등은 모두 루머에 대한 내성을 길러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루머는 인간 심리의 틈을 파고들며, 사회적 기술 구조와 맞물려 무서운 속도로 확산됩니다. 인지 부조화, 확증 편향, 동조 심리, 감정 자극, SNS 알고리즘, 정보 피로 등의 심리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우리는 점점 더 루머에 취약한 환경에 놓이게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보를 마주했을 때 ‘감정’이 아닌 ‘판단’으로 접근하는 태도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출처 확인 습관, 비판적 사고 훈련, 정보 소비 자율성 같은 개인의 심리적 방어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혼란의 시대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고의 중심을 지킬 수 있습니다.